Matsumoton Jun's Mantis
Simeun Museum of Art, Ganghwa-gun, Incheon,
2019.11.8 - 11.16
전보배 님에게
제가 순전히 <마츠모토 준의 사마귀>를 보러 가려 마음먹게 된 이유는 이 전시가 강화도의 어느 외딴 미술관에서 열린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이색적인 것에 호기심을 느낀 것처럼 들릴 수 있을텐데,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정확하게 말하면 조금은 개인적인 마음의 사정이겠죠. 불현듯 아직 가보지 않은 어느 섬의 풍경이 상상되었고 그곳으로 가기까지 내가 어떤 시간을 보내게 될까 기대했어요. 어쩌면 그 즈음 저는 그런 낯선 풍경과 비어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스스로 생각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분 전환이라면 기분전환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서로 너무 붙어 있고 겹쳐 있는 것들에 간격을 줘야만 했던 것 같아요. 이야기가 되지 않고 그저 덩어리처럼 보이는, 엮이지 않고 쌓여만 있는 것들이 제 안에 너무 많았던거겠죠.
강화도를 가는 이런저런 방법을 찾아보았습니다. 대중교통이 있긴 했지만, 차를 빌려 직접 운전을 해서 가게 되었습니다. 다른 일들 때문에 오가는 시간을 아껴야 하기도 했지만 누군가 데려다 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 길을 찾아 가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늘 그런 약간은 긴장된 상태를 즐거워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비가 온 이후라 아침 일찍 나서서 들이 마시는 공기는 상쾌했고 하늘도 맑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강화도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는 드라마틱하지 않았는데 그저 잘 만들어진 넓은 도로를 따라 가면 됐으니까요.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즐거웠습니다.
심은미술관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어디에나 있는 문화재생사업의 흉물이지는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이제는 학교가 아닌 교정에 들어서는 순간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아무도 없었고, 하늘은 정말 파랬고, 무엇보다 그곳엔 아주 사소한 것들이 소리 없이 또 조용히 수다스럽게 있었어요. 색이 바뀌어가고 있는 식물들을 살펴보고, 자그마한 조각공원에 놓인 작품들도 이리저리 구경했습니다. 그네 한 쌍의 아래에는 물이 얕게 고여 있었고, 커다란 원형 조각의 철판에는 녹이 잔뜩 슬어 있었어요. 새삼스럽게도, 제가 매혹되는 것은 이처럼 부재를 증명하는 풍경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눈앞에 보이는 바로 이 세계가 그저 자연스럽게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힘들이 가득하게 관여되어 있음을 말해주는 그런 풍경이요. 그런 풍경은 늘 진실에 대한 상념을 불러 일으키거든요. 닫혀 있는 학교 건물 밖에서 창문을 통해 안을 구경했습니다. 곳곳에 능청스럽게 놓여 있는 조각들과 그림들이 인상적이었어요.
전시가 건물 안에서 열리는 줄 알고 입구를 찾아보다가 건물 옆 쪽 작은 공터에 걸린 <마츠모토 준의 사마귀> 현수막을 발견했어요. 섬뜩한 개의 얼굴이 그려진 그림은 잘 펴져 있었지만 나머지 하나는 멋있게 엉켜 있어서 뭐가 쓰여있었는지는 잘 보지 못했습니다. 탁자 위의 책은 날이 너무 추워서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슬쩍 훑어보았지만 이 전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을 꼭 읽어야만 해야한다고 느꼈어요. 신은지에 대하여. 신은지의 그림에 대하여. 그리고 그의 미술이 전보배라는 한 사람을 만나며 비로소 미술이 되는 그런 이야기. 어쩌면 이 전시는 보기 드물게도, 순수하게도 미술 자체에 대해 묻고 답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이건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에 다시 책을 꼼꼼히 들여다보며 든 생각이지만요. 저는 미술을 한다는 것이 사실은 삶과 너무 강하게 끈적하게 붙어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확인해 나갑니다. 미술은 노동과 여가가 분리되지 않는 그런 형태일 때가 많다는 점에서 사실은 지독하게 피로하고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은 것 같아요. 반대로 생각 하면 미술을 한다는 건 삶의 문제와, 나의 주체성을 만드는 일과 결코 분리 될 수 없는 거겠죠. 동시에 모든 것을 복잡하게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 공허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저는 사실 이 세계가 그만큼 복잡한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복잡하게 생각하는 방법인 미술을 여전히 좋아할 수 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늘 생각과 마음이 숨쉬고 도망갈 수 있는 사이 공간을 찾아야 하겠죠. 그렇게 제 몸을 멀리로 옮겨갈 수 있도록 초대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잇길을 걸어가며 고민하는 것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따뜻한 커피를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추위도 한결 가시고 좀 더 오래 그곳에 머물며 즐길 수 있었어요. 인사드리고 나오는 길에, 여기까지 왔는데 바다도 못보고 가면 안되지 싶어 차를 몰고 근처에 가장 가까운 부둣가로 갔습니다. 해가 좋고 공기가 맑아 바닷물 위로는 눈이 부시게 물별이 부서지고 있었어요. 한참을 가만히 구경하고 서울로 돌아갔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동네 꼬마와 즐겁게 말을 나누고 있는 전보배님을 스쳐 지나갔어요. 마지막으로 뵌 모습이 그것이어서 기쁜 마음으로 강화도를 벗어났습니다. 바깥에서만 가능한 그런 것들이 있구나, 생각하면서요. 그럼 또 어디선가 뵙게 되기를 바라며, 따뜻한 겨울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한범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