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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모토 준의 사마귀

/전보배

(그림1)

신은지와는 근 이 년 만이었다. 무슨 은지였는지 성마저 기억이 가물가물 해질 때 즈음 갑작스러운 전화로부터. 별다른 용건 없이 몇 년 만에 이렇게 불쑥 누군가를 보게 되는 일은 아마도 없다. 불편할 수 있을 만한 이러한 만남에 이 사람이 예외가 된 이유는 내가 이 사람에게 미지의 무언가를 덮어씌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신은지는 괄호 안으로부터의 이방인 같다고. 중학생과 진배없는 얼굴에서 더는 늙어가고 있지 않다는 점과 무언가를 숨기려 들고 있지 않다고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 그렇다. 그래서인지 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발생된 특이점이 있다면 내가 동승한 일련의 일화들을 통해 쌓인 경험치로써 이 사람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 항목별 문답의 형식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으로, 그 까닭은 언제나 내 쪽에서만 이루어지는 일방적인 궁금증 때문일 것이다.

  ‘부산 사투리를 쓰는 부산 사람, 대학교는 진작에 졸업했으나 여전히 대학교 근처 원룸에서 자취를 하며 작업실 또한 학교 인근의 1인용 파티션이 쳐진 공동 작업실에서 회화 작업을 한다. 거의 모든 그림에 등장하는 것 같은 어린아이 혹은 도깨비 같은 이것의 정체는 모호한데, 지칭할 만한 의도 된 인물은 없으며 그리다 보면 항상 이런 모습이 되어있는 것이라고 말했었다. 신은지의 정확한 나이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 주변 사람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임은 분명하다. 아르바이트 또는 직장을 다니는 일과 같이 생계유지를 위한 활동은 따로 하고 있지 않으며 어머님이 주시는 용돈으로 생활하고 있음’ 과 같이.

카페에서 안부 인사로 시작한 대화는 장장 다섯 시간이 넘도록 이었다. 이 날에 신은지는 자신의 그림에 글을 달아야 하는 일에 대해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자신이 작업하는 데 있어 어떠한 것을 그리겠다고 마음을 먹고 그려내지 않거니와 자신 안에서 작업의 맥락이나 의미 전달에 대한 것이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이라고. 내게서 어떠한 조언 따위를 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나는 신은지가 그림을 그리는 과정, 작업 방식에 관해 물었다.

 신은지는 캔버스 틀에 천을 짜고 여러 차례 젯소 칠 해 준비를 끝낸 흰 캔버스 앞에 앉고선, 그림이 종료 (멈춤) 될 때까지의 여정만 존재할 뿐이었다. 이 사람이 작업함에 있어서 흰 캔버스와 물감 그리고 자신만 있으면 될 일이었고, 너무나 당연한 이 과정들이 나와는 너무나도 멀리 있다는 생각에 어쩐지 신기하기까지 한 것이었다. 신은지는 핸드폰 속 사진첩으로 그간의 작업들을 보여주었고 나는 신은지의 최근 그림이 아닌, 예전에도 본 적이 있는 그림인 < >에 멈춰서 말했다.

   “기억난다. 이 그림. 이거 개잖아.”

  몇 년이 지나고 다시 마주한 그림 속 개는 여전히 상어로 보였다. 접시 위에 놓여진 상어 대가리.

배경

A는 안대로 눈을 가리고 MJ는 제한 시간 내에 제시된 단어를 점토로 만들어야 한다. 3분 뒤, A는 안대를 벗고 MJ가 점토로 만든 것이 과연 무엇인지 맞춰야 한다. MJ가 봤다던 사마귀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장내는 웃음바다가 되었고, A가 정답을 맞히기란 불가능하다.  

 이 날 MJ의 활약은 하이라이트가 되어 N은 ‘171130 vs아라시- 마츠모토 준의 사마귀’로 방송 회차를 요약한다. 떠들썩한 장내 속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과연 이 코너에 웃을 수 있는 사람인가? 당연히 MJ는 사마귀를 괴수처 

   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제대로 사마귀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다만, 왜?’

 MJ의 자리를 비워놓고 내가 MJ의 역할이 된다. 제시어는 마찬가지로 사마귀. 점토 앞에 나는 MJ와 다를 것 없이 마찬가지에 괴수를 만들어냈고 A는 역시나 정답을 맞히지 못했다. 침착하게 자리에서 다시 자리로 돌아와 머릿속에 찬찬히 그려보자.

 연두색, 조그마한 삼각형 대가리 양쪽에 동그란 눈이 두 개 달리고 기다란 몸통에 날카로운 반달형 앞다리, 날개는 몸통 안에 숨겼던 것 같고.. 그런데, 도대체가 사마귀 다리는 몇 개인지 또 몸통은 몇 등분으로 나눠진 곤충인지 알 수가 없다. 가만, 입으로 이렇게 아는 척 서술하지 말고 종이 위에 그려보자.

  ‘아. 나는 사마귀가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왜 인지 계속 사마귀를 머릿속으로 그려 대고 있는 까닭은 스스로가 사마귀가 어떤 생김새를 가졌는지 알고 있어야 하고 바로 구현이 가능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뿐이다. 사마귀를 그릴 줄 모른다는 사실은 어째서 스스로를 바보로 느껴지게 만들고 있는 것인지. 지난 작업 때 내가 비둘기를 어떻게 그렸는지 떠오른다.  구글 창에 비둘기라고 검색했다. 심지어 비둘기의 생김새를 충분히 알고 있었고 보지 않고도 그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독백

내가 하는 이야기들이 거의 잠과 꿈에 관한 이야기들뿐 인걸 너도 알고 있을 거야. 비정상적으로 과도한 수면시간을 사수하는 게 일이고, 잠에 말 그대로 집착하니까 당연히 꿈과도 떼어질 수가 없지. 꿈이 미지의 장소임은 분명하지만 그곳이 마냥 신비하게끔 꾸며지지 않는 이유는, 사실 꿈을 꾸는 모두가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을 뿐’인 형사와 다름없기 때문이 아닐까? 꿈에 관해서 확실시된 것들이 있잖아. 네가 꾼 꿈은 항상 네가 알고 있는 것들 위에 세워지고 깨어있을 때에는 스스로가 모른다고 여겼던 사실들, 그러니까 소위 잠재된 무의식은 알고 있던 사실들을 꿈에선 알게 될 수도. 게다가 더 나아가 영영 모를 정보를 꿈에서 얻었다고 여기면서 계 탔다고 말할 수도 있지.

 얼마 전에 꾼 꿈 이야기를 해 줄게. 요새 밤마다 유튜브로 보는 남자 아이돌 중에 ㅅㄴ라고 있는데, 글쎄 걔랑 섹스하는 꿈을 꿨어. 아, 걔 고추가 그렇게나 크고 예뻤는데… 역시 내 예상이 사실이었네 싶더라고. 중요한 건 이 다음인데,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이랑 섹스하는 꿈을 꾸는 건 되게 럭키인 일 이 잖아. 근데 그게 그럴 수만은 없던 게, 내가 전보배로 ㅅㄴ랑 섹스한 게 아니라 여자 아이돌 ㅂㄹ가 되어서 섹스를 했단 거야. 심지어 ㅂㄹ는 ㅅㄴ랑 같은 소속사에 선배였고 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거. 이 꿈을 꾸고 마냥 헤실 거릴 수만은 없던 이유가 바로 이 포인트야. 난 내 꿈속 에서조차 나로서 ㅅㄴ와 섹스할 수 없었다는 사실!

꿈은 참 많은 걸 제시해. 그날 꾼 꿈은 그날에 날씨처럼 종일 영향을 미치고 그게 며칠이나 더 지속될런지도 모를 때가 있어. 어떤 꿈 들에서 깨어나면 머리맡에 핸드폰부터 찾아. 어떤 꿈이었는지를 꿈이 날아가기 전에 기록하기 위한 용도는 아니고, 그 꿈을 마찬가지의 하루였다고 생각하고서 감상 섞인 일기를 적는 거야.  

   ‘꿈속에서도 난 혼자였다’ 라던지 ‘엄청 좋은 전시를 봤는데 내 전시가 아니었 

    다’…      거의 이따위의 글들이 대부분이지만.

 꿈속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내가 보고도 알아채지 못한 동물이 개 라니. 사마귀를 그리지 못한다는 것에 스스로가 느끼는 감정은 내가 일련에 꿈 들에서 깨어난 뒤에 드는 무력감과 흡사해. 그런 꿈들은 꾸고 나선 스스로가 아둔하게 느껴져. 꿈속이니까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던 것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되어버리는. 도대체 시야는 언제 확장되고 감긴 눈은 언제 뜨게 된다는 걸까? 아는 것들 사이로만 흐르는 것들을 무슨 수로 막냐는 말이야. 내가 눈을 감고 있든 뜨고 있든 알고 있는 것들로만 흘러가는 것들을.

 

(구글에 입장)

신은지의 회화 (그림1)속 ‘개’는, ‘개’ 라기보다는 ‘상어’의 모습에 가까워 보인다. 그 까닭을 그림 안에서 찾아보자면, 날카로운 이빨을 보이는 턱부터 목까지의 형태가 ‘개’의 모습임에 있을 것이다. 개 가 상어로 읽히는 오류의 이유는 간단하다. 개의 신체 중 턱 밑 부분은 보통 ‘개’를 떠올릴 때 머릿속 안에 가지게 되는 이미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무엇을 떠올리면 이빨을 보이는 턱부터 목까지의 신체를 연상시키게 될까 하면 그것은 ‘상어’가 된다. 아마 신은지가 개가 아닌 다른 동물, 햄스터나 어쩌면 사람이었더라도 그것의 ‘턱 밑’을 그렸더라면 그것 역시 상어로 읽히게 되었을 오류인 것이다.

 ‘턱 밑’ 은 애매모호한 공간이다. 신체의 어떤 부분이라기 보다 평상시에는 감추어진 혹은 닫혀있는 ‘공간’이라고 보아도 무방하고,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 또한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신은지는 자신이 ‘개’를 그렸을 뿐 ‘턱 밑’을 그렸다고 생각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개를 그리고자 했을 때에 그게 어떻게 개의 턱 밑 부분을 그리게 된 건지에 대한 신은지의 통로가 궁금했고, 이건 ‘그냥’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나는 신은지의 ‘그냥’이 가진 경로가 탐이 났다. 치와와, 말티즈, 푸들 등 과 같은 개의 종, 귀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개, 개의 정면, 정 측면, 개의… 드래그 드래그…이것들은 결과의 보고다. 그리고 내가 ‘그냥’ 보았던 것들은 내 머릿속에서 어떠한 경로를 설정 시키고 있었다. 결과의 보고들은 시점이 없다. 그리고 이것들을 ‘그냥’ 보던 와중에 나의 시점 또한 분명 상실되고 있음을 느꼈다. 단순히 ( )를 그리는 상황에서 나는 ( )를 검색하고 ( )의 이미지를 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때에는 ( )의 모양새에 대한 정보가 내게 있느냐는 질문조차 생략된다. ‘그냥’이 지닌 이 경로 속에서 내가 그린 ( )는 아무도 묻지 않은 값이 되어버린다.

 신은지의 그림에 등장하는 것은 세 가지를 넘지 않는 것 같다. 맛있어 보이는 케이크와 식기들, 식탁보 등 애초에 그림을 위한 서치 자체가 필요치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드는 것들이다. 신은지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걸치고 있는 것들이 없다. 그림의 구축 과정 중에 쌓여진 지층처럼,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레이어가 없다는 소리다. 단순히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을 참고하는 일 마저도 작업 과정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롯이 캔버스 앞에 앉아 그림이 종료될 때까지의 여정 만 존재하는 작업 과정은 분명 신은지에게 오류로 비치는 ‘그냥’ 의 경로를 선사했다.

 이에 반해, 나의 눈은 이미 카메라 렌즈의 대용품처럼 쓰이고 있는데 예를 들어, 윙크 같은 동작으로 눈으로 포착한 순간을 내 핸드폰으로 자동 백업 시키길 원하는 정도로 신체를 기계처럼 쓰고 싶어 한다. 이러한 욕망은 새로운 것을 포착하고 작업에 이용하고 싶은 심리에서지만 동시에, 자신의 신체를 컨트롤한다는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을 통해 얻고 싶은 욕망이다. 실제로 이러한 욕망에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적합하다. 그곳에선 그리고 싶은 대상을 3D로 구축하고 변형시키는 과정들이 앉은 자리에서 좁은 반경의 손목 움직임으로 가능하고, 대상의 전면을 관찰할 수 있음은 물론 투과하는 것까지 셀 수 없는 수의 시점을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살펴보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날에 신은지는 자신의 그림에 글을 달아야 하는 일에 대해 고민이었는데,

아마 신은지는 자신의 작업 방식에 겹쳐진 레이어가 없기에 그림에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자신의 작업 과정에 ‘레이어 없음’이 작업에 ‘할 말이 없음’으로 잘못 치환 된 걸 수도 있다는 생각. 나는 신은지가 자신 안에서만 그림의 소스를 찾는 일에 무언가를 덮어씌우고 있지 않음을 분명히 하고 싶다. 이 이야기는 이 사람에게서 나온 ‘결과물’이 우연히 동시에 필연적으로 다른 통로를 지니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신은지의 작업과정 속 어떠한 진위 여부와도 관련이 없다. 단지 이 통로에 대한 이야기 속, 작가는 자신이 명백히 그려 놓은 개가 사람들에게 개로 읽히지 못한다는 것에 의아해 한다.

 

박제사자 이야기

※해당 글은 2017년 3월 26일에 방영 된〈신비한 TV 서프라이즈〉박제사자 이야기를 옮긴 것 입니다.

 

… 1970년대 그립스홀름성

당시 스웨덴 국왕이였던 프레드릭 1세는 아프리카 알제리에서 사자 한 마리와 아프리카 야생 고양이 그리고 하이에나 두 마리를 선물 받는다. 그는 이 동물들을 스웨덴 왕실 동물원인 주르고르덴에 풀어놓은 뒤 애지중지하며 길렀는데, 그 중에서도 프레드릭 1세가 가장 아끼던 것은 사자였다. 하지만 몇 년 후인   1731년 이 사자는 돌연 병 들어 죽고 말았고 이에 크게 상심한 프레드릭1세는 사자의 사체를 묻어주라 명했다.   그런데, 얼마 후

  “사자의 무덤을 파헤쳐 사체를 꺼내도록 하라! 사자를 박제로 만들어 살아있던 모습 그대로 내 곁에 두어야겠다. 당장 박제사를 데려 오거라!”  사자를 박제로 만들라는 프레드릭1세.

사자를 박제로 만들어 평생 곁에 두고 보겠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자네의 박제 실력이 이 나라에서 최고라지? 3개월 안에 사자를 박제로 만들어 주게.” 

   “예. 그리하겠나이다.”

프레드릭1세는 한 박제사에게 일을 맡겼고

…3개월이 흐른 뒤

  “폐하. 박제 사자를 완성했습니다.”

  “그래? 내 그동안 사자를 얼마나 그리워했던지…당장 봐야겠구나.”

            그런데

“감히 사자를 이따위로 만들다니! 네가 짐을 능멸하는 것이냐?”완성품을 보고 불같이 화를 내는 프레드릭 1세.

뜻 밖에도 그 이유는 박제 사자의 생김새 때문이였는데…

 측면에서 보면 이 박제 사자는 일반적인 사자의 모습과 흡사하지만, 정면에서 본 사자의 얼굴은 사자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우스꽝스러웠던 것이다. 날렵한 턱과 길게 뻗은 코, 매섭고도 날렵한 눈매를 가진 실제 사자와의 얼굴과는 달리 박제 사자는 마치 삽살개처럼 커다랗고 순한 눈망울을 하고 있으며 이빨은 날카롭기는 커녕 사람의 치아처럼 곧고 가지런한데다 심지어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혀까지 길게 내밀고 있다.   

 그렇다면 당시 박제사는 사자의 얼굴을 왜 이렇게 우스꽝스럽게 만든 것일까?

프레드릭1세로부터 사자를 박제하라는 명을 받은 박제사는 실제의 사자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사자의 사체가 묻혀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사자의 사체를 본 그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는데 그 이유는, 이미 사자의 가죽은 카펫으로 만들어 보관하던 상태로 나머지 사체는 심하게 부패되 도저히 그 모습을 알아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어떻게 사자를 박제로 만들라는 거야? 사자가 어떻게 생긴 동물인지도 모르는데…”

 문제는 박제사가 단 한번도 사자를 본 적이 없었다는 점이였다.

   “자네! 혹시 사자라는 동물을 본 적이 있는가?”

   “사자? 그런 동물은 처음 들어보는걸?”

 심지어 주변에서도 사자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자의 서식 지역은 아프리카와 인도의 초원지대로 당시는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라 동물의 운송이 거의 없어서 스웨덴은 물론 유럽 전역에서 사자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사자가 대체 어떻게 생긴 것입니까?”

  “음 그게 말일세…몸은 이만치 크고 다리 네 개가 달렸다네. 온 몸에는 갈색 털이 있고..”    심지어 사자를 본 사람에게 생김새를 전해 들어도 도저히 그 모습을 떠 올릴 수가 없었다.

  “박제 사자를 만들지 못하며 살아남지 못할 텐데…정말 바보 같은 상황이구만.” 

“아,이보게! 성 안에서 사자 조각을 본 적이 있다네”

  “그게 정말입니까?”   다행히도 그는 그립스홀름성 안 쪽 벽 귀퉁이에 사자가 작게 조각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는 사자의 측면 모습만 조각된 것으로 얼굴 생김새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뭐야…이건 사자의 옆 모습뿐이잖아! 하는 수 없지. 이거라도 보고 박제를 완성하는 수밖에…”    

 별 뾰족한 수가 없었던 박제사는 그 사자 조각을 본 따 솜으로 외형을 만든 뒤, 실제 사자의 가죽을 덮어씌워 박제 사자의 몸을 그럴듯하게 완성했고

“이제 얼굴은 어쩌지? 아, 그래! 네발 달린 것이 개와 비슷하니 아마 얼굴도 비슷하겠지?”    나머지의 사자의 얼굴은 자신이 기르던 개의 얼굴에 상상을 더해 만들었던 것이다.

 

 ………

 

  “감히 사자를 … 여봐라! 당장 이 자를 감옥에 가두라!”

  “페하…! 페하!”

 결국 완성품을 본 프레드릭 1세는 크게 진노하며 박제사를 감옥에 가두라고 명했고 박제사는 사자를 우스꽝스럽게 박제한 죄로 6개월 동안 수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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